新羅 眞骨의 ‘家系 分枝化’에 대한 재검토-사위의 왕위계승권을 중심으로-Rethinking Lineage-branching Theory on ‘True-bone(眞骨)’ Status in the Silla Dynasty
- Authors
- 이재환
- Issue Date
- May-2017
- Publisher
- 대구사학회
- Keywords
- 가계 분지화; 진골; 사위(女壻); 왕위계승; 오묘(五廟); 왕족; 귀족; lineage-branching; true-bone status(眞骨); son-in-law; succession to the throne; royal ancestral shrine(五廟); royal family; aristocrat
- Citation
- 대구사학, v.127, pp 79 - 115
- Pages
- 37
- Journal Title
- 대구사학
- Volume
- 127
- Start Page
- 79
- End Page
- 115
- URI
- https://scholarworks.bwise.kr/cau/handle/2019.sw.cau/45570
- ISSN
- 1225-9039
- Abstract
- 지금까지 신라 중대 이후 진골이 단일한 父系 친족집단에서 여러 개의 家系 및 小家系로 분지화해 나갔고, 하대에 들어서면 이렇게 형성된 小家系들의 대표자들이 왕위를 두고 서로 경쟁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중대 말·하대 초에 왕위를 둘러싼 대립이 첨예화되어 무력 분쟁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조상을 공유하는 家系가 세력 단위로 표방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왕위 계승에서 나타나는 신라의 특수성은 家系의 분지화가 아니라 사위(女壻)를 통한 왕통의 전달을 인정하는 데 있었다. 사위의 왕위계승권은 상고기의 왕위 계승에 관한 전승에서 나타나며, 이후 憲安王의 사위로서 즉위한 景文王처럼 사위의 자격으로 왕위를 이어받았던 사례들이 보인다. 神德王이나 경순왕 또한 憲康王의 사위와 외손이라는 관계가 왕위 계승의 근거가 되었음을 五廟 배향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분지화한 家系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져 왔던 興德王 사후의 왕위계승 분쟁 또한 계승권자인 忠恭의 아들과 사위들이 왕위를 놓고 충돌한 것으로서, 소가계 분지화의 사례로는 보기 어렵다.
결국 신라 중·하대에 확인되는 왕위를 둘러싼 분쟁의 사례들은 ‘왕권’과 그 반대편의 ‘귀족’ 간에 벌어진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아니라 왕위에 접근할 자격을 갖춘 이들 사이에서 왕위의 획득을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무열왕대 이후 신라에서는 ‘왕족’과 그 외의 진골 간의 명확한 구분을 설정하기 어렵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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