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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 찬불가의 시대적 고찰A Historical Study of Baek Yong-Sung’s Buddhist Hymn

Authors
안승철
Issue Date
2022
Publisher
대각사상연구원
Keywords
Baek Yong-Sung; Korean Buddhist Hymn; A Composed Buddhist Hymn; Korean Buddhist Hymn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Korean Buddhist Music; 백용성; 찬불가; 전근대 한국불교; 창작 찬불가; 보살도
Citation
대각사상, no.37, pp 143 - 176
Pages
34
Journal Title
대각사상
Number
37
Start Page
143
End Page
176
URI
https://scholarworks.bwise.kr/cau/handle/2019.sw.cau/61859
DOI
10.35768/taegak.2022..37.005
ISSN
1229-1080
Abstract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조선말, 일제강점기에 걸친 전근대 시대에 활동하면서 향후 전개될 한국불교의 방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승려이다. 본 연구는 이런 조선말·일제강점기를 가로지르는 한국 전근대사회의 변혁 속에서 백용성의 중도적 자세가 가지는 의미를 특히 그의 찬불가와 관련하여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백용성의 전근대 시대에 대한 고민과 혜안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다. 그는 생애 초반에 한국 전통불교의 계승자이자 수호자로서 본인의 수행과 증득, 그리고 보림(保任)에 힘썼다. 또한 백용성은 시대적 사명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투옥 과정에서 도시문화의 발달과, 특히 기독교의 포교전략을 참조할 계기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백용성이 찬불가 이외에도 한글역경, 청소년포교, 부인선방, 독립자금지원 등의 불교변혁가의 면모를 보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백용성이 서구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어디까지나 불교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한 일로써 이는 세속의 활동에서도 진제(眞際)를 추구하는 보살도의 실천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백용성은 수행자로서 세 번의 깨달음, 마지막 대각(大覺), 그리고 오후보림(悟後保任)을 통한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실천했고, 이후 도심으로 나와 포교당의 설치 및 찬불가 창작 등의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면서 하화중생(下化衆生)을 구현하였다. 이렇게 백용성의 찬불가 창작은 그의 생애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중도적 보살도로 이해하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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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Arts > School of Korean music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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