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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공회당 건축물에 대한 역사적 고찰 - 서울시민회관으로부터 세종문화회관에 이르기까지 -The Historical Analysis of Cultural Centers in Seoul - From Seoul Civic Center to Sejong Center -

Authors
김만중
Issue Date
2021
Publisher
한국세계문화사학회
Keywords
Seoul Civic Center; Sejong Center; Syngman Rhee; Chunghee Park; Cultural Nationalism; 서울시민회관; 세종문화회관; 이승만; 박정희; 문화민족주의
Citation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no.59, pp 41 - 72
Pages
32
Journal Title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Number
59
Start Page
41
End Page
72
URI
https://scholarworks.bwise.kr/cau/handle/2019.sw.cau/62909
DOI
10.32961/jwhc.2021.06.59.41
ISSN
1598-2823
Abstract
본 논문은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서울시민회관과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정치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신문을 중심으로 두 공회당 건물의 건축과 운영을 살핌으로써 남한의 문화민족주의와 반공주의 담론이 어떻게 구축될 수 있었는지 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 체결 이후 전후 복구사업에서 공회당의 건설은 우선순위에 올라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雩南)회관으로 명명되어 건설에 착수했다. 사업에 대한 공공성 논란으로 건설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공회당에 대한 필요성은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나고 잇따른 5·16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우남회관은 서울시민회관으로 개칭하여 개관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 문화 행사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민회관이 1972년 화재로 무너짐에 따라 새로운 공회당의 건축이 논의되었고 1978년, 현재의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지게 되며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공회당 건축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남한의 재건과 부흥을 상징했던 두 공회당의 초기 모습을 살핌으로써 박정희의 군사정권이 추구했던 문화민족주의와 반공주의가 어떻게 건축물로 구현되었고 그 내부에서 재현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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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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