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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만국공법』 인식의 전통적 기원 -‘公’과 ‘公法’ 개념을 중심으로-The Traditional Origin for the Way of Understanding ‘萬國公法(만국공법; Man Guk Gong Bup)’ in Modern Korea -Focusing on the Meaning of ‘公(공; Gong)’ and ‘公法(공법; Gong Bup)’-

Other Titles
The Traditional Origin for the Way of Understanding ‘萬國公法(만국공법; Man Guk Gong Bup)’ in Modern Korea -Focusing on the Meaning of ‘公(공; Gong)’ and ‘公法(공법; Gong Bup)’-
Authors
민회수
Issue Date
Nov-2020
Publisher
고려사학회
Keywords
公(Gong); 公法(Gong Bup); 萬國公法(Man Guk Gong Bup); natural law; justice; W.A.P.Martin; H.Wheaton; 公; 公法; 萬國公法; 자연법; 정의; W.A.P.Martin; H.Wheaton
Citation
韓國史學報, no.81, pp.177 - 211
Journal Title
韓國史學報
Number
81
Start Page
177
End Page
211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11468
DOI
10.21490/jskh.2020.11.81.177
ISSN
1229-6252
Abstract
고대 중국에서 ‘公’은 지배자, 지배기구를 뜻하는 의미와 더불어 ‘平分’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荀子, 韓非子 등의 사상가에 의해 ‘私’와 대비되며 ‘좋고 옳은’ 것이라는 가치를 내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宋代 朱熹에 의해 人慾을 의미하는 ‘사’와 대비되어‘天理’를 상징하면서 강한 긍정적 가치를 부여받았다. 이 ‘공’은 한반도에도 전래되어유사한 의미로 활용되었으며, 성리학이 國是인 조선시대에서는 公論 등의 표현으로 널리 쓰이며 ‘절대적으로 옳은(正; justice)’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는‘공’에 대한 담론이 사상적인 측면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맥락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었으며, 이는 ‘절대적으로 옳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절대로 옳은, 따라서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을 의미하는 ‘公法’이라는 용어 또한 조선시대에 관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특히 조선후기 들어서 출현 빈도가 잦았으며, 그중에서도 탕평정치를 지향했던 영조·정조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의 공법은 심지어 국왕이라 하더라도 예외 없이지켜야 했으며, 어길 경우 신하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justice’ 개념의 ‘공’에서 파생된 ‘공법’의 준수 대상으로서의 절대성이 엿보이며, 마틴(W.A.P.Martin)의 『萬 國公法』 번역 이전에 조선에서는 ‘공법’을 자연법에 가깝게 이해할 토양이 싹텄음을 추측할 수 있다. 마틴이 휘튼(H.Wheaton)의 저서를 漢譯할 때 원서의 실정법과 자연법의 절충주의적 입장을 의역하여 자연법적인 요소가 부각되도록 했는데, 19세기 말 조선에서 만국공법을 자연법적 맥락으로 이해하는 내용의 사료에서 이 한역본의 영향은 잘 확인되지않는다. 그보다는 조선후기의 절대 준수 대상으로서의 ‘공법’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만국공법의 이해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만국공법과는 무관한조선후기적 맥락의 ‘공법’ 용어가 고종대에도 여전히 빈번히 쓰이고 있음에서 그러한 유추가 가능하다. 일반 유생이나 위정척사파가 아닌 국왕이나 핵심 관료, 개화파 등의 만국공법 인식은 비록 텍스트 자체에 기반할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이 역시 전통적인 ‘공법’ 인식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개화 언론의 대표격으로 만국공법을 조선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漢城周報』에서조차 전통적‘공’개념에 기반한 ‘공법’에 대한 이해의 예를 찾을 수 있는 데서, 당시 조선 사회에 있어 ‘공법’에 대한 전통적 이해방식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만국공법적 세계를 약육강식을 지양하는 자연법적인 그것으로 ‘오해’하는 이해방식은 거의 대부분 그를 바탕으로 하여 그러한 세계관의 법칙을 어긴 일본 등 제국주의열강의 침략 행위에 대한 규탄으로 ‘역이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렇게 만국공법에 대한 ‘오해’와 그 오해의 ‘역이용’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현상은 ‘공법’을 왕이나심지어 天子까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다. 대한제국 성립 이후 국제법 서적들이 널리 인용되고 읽히면서 을사늑약 이후 만국공법을 활용한 일본 규탄 상소들은 실제 국제법 서적들의내용을 인용하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공법’이라는 용어의 전통적 개념만을 가지고 만국공법에 대해 이해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 근저에는 전통적인‘공’과 ‘공법’에 대한 개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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