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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古代諸國의 對外交易―加耶를 中心으로―International Trade in Ancient States of Korea : With Particular Focus on Gaya

Other Titles
International Trade in Ancient States of Korea : With Particular Focus on Gaya
Authors
김태식
Issue Date
2006
Publisher
진단학회
Keywords
가야; 대외교역; 낙랑; 백제; 왜; 대가야; Gaya; International Trade; Lolang; Baekje; Wa; Daegaya; Gaya; International Trade; Lolang; Baekje; Wa; Daegaya
Citation
진단학보, no.101, pp.1 - 32
Journal Title
진단학보
Number
101
Start Page
1
End Page
32
URI
https://scholarworks.bwise.kr/hongik/handle/2020.sw.hongik/24868
ISSN
1013-4719
Abstract
서력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가야는 양호한 입지적 조건과 ‘철’이라는 전략물자의 생산 및 유통을 통해 한반도 남부의 원거리 해상 교역의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가야는 선진문물 供給源인 낙랑군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스스로 자생적인 권력을 창출하거나 주변 지역을 통합하는 주체로 쉽사리 대두될 수 없었다. 반면에 그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 군현이 약화될 때마다 그에 대항하는 권력 주체로서 성장하였다. 3세기 후반에 한반도 동남부의 신라가 낙랑과의 내륙 교통로를 개척하여 새로운 권력 및 교역 주체로 나타나자, 경남 김해의 가야국도 신라와 영역을 다투며 권력 통합을 추구하였으나, 둘 다 낙랑군과 대방군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4세기에 북방민족의 대두로 중국이 크게 동요하자,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계 이주민을 흡수하고 중국 왕조들과의 직접 교역으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신라와 가야는 아직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고구려 및 백제와 제한적인 교역을 행하였고, 왜는 가야로부터 선진물자를 공급 받고 있었다. 특히 가야는 4세기 말기에 백제와 교역을 하였으나, 그로 인해 피동적으로 동북아시아 정세에 휘말려서 파멸되었다. 5세기 중엽에 한반도 남부 제국 및 왜의 교역망을 재건하려는 백제의 움직임에 따라 경북 고령의 반파국이 계발되어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반파국은 5세기 후반에 백제의 일시적 몰락에 힘입어 ‘대가야’가 되어 스스로 주변 지역 및 왜와의 교역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6세기에는 이미 백제와 신라가 가야에 비하여 정치적으로 성숙한 사회 단계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는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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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Education > Department of History Education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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