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에 나타난 영웅 형상 연구- 김훈의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을 중심으로

Abstract

평범한 사람들을 주로 다루는 현대소설에서 영웅이 등장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늘날 만난(萬難)을 극복하고 모든 이의 추앙을 받는 비범한 존재로서의 영웅은 대중소설에서나 등장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소설 작가 중에 이순신, 이사부, 우륵, 정약용과 같은 영웅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는 예외적인 작가로는 김훈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김훈의 여타 소설들이 상당수의 논문이나 평론을 통해 다루어진 것과 달리 <개>는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 바 없다. 특히나 영웅 형상과 관련하여 <개>는 소재의 특이성만큼이나 김훈만의 고유한 개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김훈은 인간이 아닌 개를 통해 거품과 오해로 가득찬 개념화된 언어의 망상을 벗어난 몸의 존재를, 교환가치에 편입되지 않은 건강한 노동의 존재를, 문명의 허위와 위선과는 거리가 먼 직접적인 감각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동시에 개는 철저하게 잔혹한 현실을 품어 안는 무한 긍정의 운명애로 가득한 존재로서, 김훈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역사적 영웅들처럼 스노비즘(snobbism)을 체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개가 보여준 현실에 대한 무한긍정의 모습 속에는 한 개체의 단독성과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위험성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영웅 형상은 <개>에서 보리라는 개를 만나 설득력 있게 형상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