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소설의 오빠 표상 연구

Abstract

이 글은 박완서 소설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오빠가 표상되는 방식의 변화양상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재현이 아닌 표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에 드러나 오빠의 형상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결과가 아니라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문제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따라서 표상에 대한 연구는 그러한 표상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욕망과 정치적 무의식 등을 검토하는 작업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박완서 문학의 핵심에는 한국전쟁이, 한국전쟁의 핵심에는 오빠의 기억이 놓여 있다. 박완서에게 오빠로 대표되는 한국전쟁의 체험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개인적인 트라우마(trauma)로서 존재한다. 나아가 오빠는 한국전쟁 당시 일반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한 전형이 되기에 충분하다. 박완서가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서사화하는 것은 문학적 창작 이전에 자신의 트라우마에 맞선 힘겨운 투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나아가 오빠에 대한 형상화는 내셔널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전쟁 신화를 의문시하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피와 땀의 자국들을 수습함으로써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초기 작품에서 오빠로 표상되는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무엇보다 치유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치유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과 ‘사회의 공식적 기억에 기대는 방식’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초기에 오빠와 관련한 한국전쟁의 기억을 소설화하는 것의 핵심은 자기치유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즉 오빠로 상징되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되새김질할수록 작가의 관심은 자기 치유에서 사건에 대한 증언이라는 문제로 확대된다. 실제 오빠의 행적에 바탕한 한국전쟁의 문학적 형상화는 냉전이 해체되고, 한국전쟁과 관련된 사회적 금기가 풀리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에 가능해진다. 그러나 폭력적인 사건의 핵심적인 성격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 존재한다면, 그러한 서사화야말로 사건에 대한 무화 내지는 은폐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박완서의 여러 작품에는 재현불가능성이라는 사건의 본질적인 성격이 은근하지만 강력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오빠와, 오빠와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박완서의 한국전쟁과 분단에 관한 소설들은 그 사건들을 잘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표상불가능성이라는 근본적 속성을 증언했다는 점에서도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