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용 초기 소설에 나타난 모방 메커니즘 연구

Abstract

유재용의 초기 소설에는 그 이전이나 동시대의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고유한 심리적 메커니즘과 주체 구성 양식이 드러나고 있다. 본고는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초기 유재용 소설에 나타난 인물의 고유한 모습과 그 형성과정을 살펴보았다. 유재용의 초기 작품은 모방적 욕망에서 시작하여 모방적 경쟁을 거쳐 모방위기 또는 희생위기로 격화되었다가 마침내 희생양 만들기로 끝나는 과정, 즉 모방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생애>와 <가발>은 모방 메커니즘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모방적 욕망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작품들이다. <상지대>와 <유랑>은 모방적 욕망에서 한 단계 나아가 격렬한 모방적 경쟁과 그에 따른 모방위기 또는 희생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모방적 욕망과 그로부터 비롯된 극심한 모방적 경쟁을 통해, 유재용이 그려낸 인물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잃어버린다. 그것은 ‘자기만의 방’을 애타게 찾지만, 결코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동거기>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타인의 생애>, <하인>, <관계>는 주인과 하인 모티프를 통해, 모방적 욕망으로 인해 주체가 소멸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탐구하고 있다. 유재용의 초기소설에 등장하는 모방 메커니즘은 당대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사용가치에 따라 욕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경쟁 관계, 즉 교환가치에 따라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작품 속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현상이 본격화 된 것은 우리의 경우 196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유재용의 초기소설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유재용의 초기 소설은 모방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다. <파수꾼>의 김주호, <생존방식>의 성순오를 비롯한 수용소 사람들은 예수의 삶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를 그대로 모방하여 실천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부를 던져 희생양 만들기로 해결되는 모방 메커니즘의 폭력성과 문제점을 고발하고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문단의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에, 유재용은 안정된 서사적 문법 위에서 우리가 애써 감추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심연을 바라보았다. 유재용이 그려낸 모방 메커니즘은 자본주의적 경제질서가 급속도로 확장되던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후면에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나아가 그는 예수의 삶에 바탕한 실천적 윤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에서 그 독특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가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