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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평의 나루A Study on the Ferries in Yangpye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Other Titles
A Study on the Ferries in Yangpye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Authors
강문식
Issue Date
Feb-2024
Publisher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Keywords
Yangpyeong; Yanggeun; the ferries; Yongjindo龍津渡; Galsanjin 葛山津; Galsanjang葛山場; 양평; 양근; 나루; 용진도龍津渡; 갈산진葛山津; 갈산장葛山場
Citation
인문과학연구, no.38, pp 73 - 106
Pages
34
Journal Title
인문과학연구
Number
38
Start Page
73
End Page
106
URI
https://scholarworks.bwise.kr/ssu/handle/2018.sw.ssu/49230
ISSN
2093-2987
Abstract
조선시대 지리지에 수록된 양평 지역 나루의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두 가지 특징적인 모습이확인된다. 첫째는 양평의 나루 중에서 용진도龍津渡가 유일하게 모든 지리지에 수록되어 있고,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용진도가 양근에서 가장 중요한 나루이자 군사상의 요충지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조선 초기에 용진도는 국왕이 강무講武를 위해 경기 동부 및 강원도로 거둥할 때 북한강을 건너는 길목으로 이용되었다. 즉, 이 시기 용진도는 ‘어가御駕 의 통행로’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용진도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한성 및경기 지역 방어의 군사적 요충지로 부상하였다. 왜란 당시 류성룡柳成龍은 용진도를 거점으로 인근지역을 연결하는 방어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용진도의 군사 주둔은 경기 동부지역의치안 확립에 상당히 크게 기여하였다. 이외에도 조선 정부는 토성土城 축조, 용진진龍津陣 설치, 훈련도감의 용진도 관할 등 용진도의 방어 체제 강화를 위한 여러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둘째는 조선 전기에 비해 18세기 이후 편찬된 지리지에서 나루 관련 정보가 훨씬 풍부하다는점이다. 이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나루의 역할, 특히 수운水運과 유통이라는 경제적 기능이 크게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양근에서 가장 중요한 나루는 갈산진葛 山津이었다. 양근 읍치邑治를 배후에 두고 있었던 갈산진은 양근 지역에서 수취한 세곡稅穀을 한성으로 운송하는 조운漕運의 출발점이었다. 또 갈산진은 19세기 중반 이후 양근의 읍내장인 갈산장과의 연계 속에서 상업 포구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갈산진은 조선 후기양근 지역 경제생활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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