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에 나타난 베트남전 기억의 변모 양상 - 안정효의 『하얀전쟁』 개작양상을 중심으로 -

Abstract

본고는 안정효가 창작한 『하얀전쟁』의 20여년 간에 걸친 개작 양상을통해 베트남전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억과 이에 대응하는 문학의 변모양상을 살펴보았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 대한 대표적인 기억의 양상으로는안보전사와 경제역군이라는 공식기억과 양민학살이나 용병론과 관련된 대항기억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전 당시부터 1980년대까지는 공식기억이 주도적인 담론이었다. 그러나 1992년 12월의 한·베 수교와 1999년 한국군의베트남 민간인 학살 폭로 등을 통해 공식기억 대신 대항기억이 사회적으로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첫번째 개작본인 1993년판이 발표된 시기는한국과 베트남이 정식 수교한 직후의 시점으로, 한국 사회에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때이다. 이러한 베트남열을 반영하듯이 이 개작본은1989년판을 그대로 유지하여 1부로 삼고, 여기에 2부와 3부가 덧붙여진 세권짜리 두꺼운 장편소설이 되었다. 1993년판 『하얀전쟁』은 탈영병의 시각을 도입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공식기억으로부터 많은 부분 벗어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대항기억의 형성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이것은 한․베 수교 당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었으나, 그것이 과거에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시대 상황과 상동성을 지닌다고도 볼 수 있다. 2009년판 『하얀전쟁』은 1993년판 『하얀전쟁』의 2부와 3부를 아예 삭제해버린다. 이것은 1993년판에서 탈영병인 채무겸의 시각을통해 보여주었던 탈식민주의적 시각과 대항기억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으로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1989년판 『하얀전쟁』에서 한국군이 비인간적인과잉폭력 행위에 가담한 부분, 베트남인들이 한국군을 반기지 않거나 나아가 저항하는 부분, 베트남전을 포함한 전쟁 일반에 대한 비판론 등을 삭제하였다. 이러한 변모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 된 베트남전의 대항기억과관련된 작가의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전쟁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 등은 ‘반공 전사’이자 ‘경제 역군’이라는 베트남전참전군인에 대한 공식기억을 아래로부터 흔들었으며, 이를 통해 공식기억과는 다른 ‘양민학살’이나 ‘용병’이라는 대항기억을 형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베트남전의 공식 기억에 강력한 친화력을 보이며 보수적으로 정치화되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이기도 한 안정효의2009년판 『하얀전쟁』은 이러한 참전군인들의 대항기억에 대한 반발과 일정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