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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대(對) 파르티아 전략: 네로의 아르메니아 전쟁(54~63CE)과 란데이아(Rhandeia) 조약open accessNero’s Armenian War of 54~63CE and the Treaty of Rhandeia

Authors
반기현
Issue Date
Dec-2019
Publisher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Keywords
Strategy; Buffer state; Contact zone; Armenian war; Treaty of Rhandeia; consilium principis; primores civitatis; Nero; Corbulo; Arsacid Armenia; Tiridates I; Parthia; Vologaeses I; 전략; 완충국가; 접경지대; 아르메니아 전쟁; 란데이아 조약; 황제 자문위; 국가의 최고위층; 네로; 코르불로; 아르사케스조 아르메니아; 티리다테스 1세; 파르티아; 볼로가이세스 1세
Citation
군사, no.113, pp 233 - 264
Pages
32
Journal Title
군사
Number
113
Start Page
233
End Page
264
URI
https://scholarworks.bwise.kr/cau/handle/2019.sw.cau/44556
DOI
10.29212/mh.2019..113.233
ISSN
1598-317X
Abstract
이 논문은 로마의 대(對) 파르티아 전략에서 아르메니아가 차지했던 위치를 네로의 아르메니아 전쟁(54~63CE)과 그 전쟁을 종결지은 63년 란데이아 조약(Treaty of Rhandeia)을 중심으로 살핀다. 첫째로 ‘로마 제국의 전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간략히 정리한다. 둘째로 기원전후 1세기 동안 아르메니아가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에서 ‘접경화’ 또는 ‘완충지대화’한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셋째로 네로의 아르메니아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 과정,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넷째로 63년 전쟁을 종결지은 란데이아 조약과 그 이행을 위한 66년 티리다테스 1세(Tiridates I)의 로마 방문이 갖는 전략적 의의에 대해 논한다. 로마 제국에 전략이 존재했는가 여부는 로마 제국 대전략(Grand Strategy)에 관한 러트왁(E. W. Luttwak)의 연구 이후 가장 논쟁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제국의 중앙에는 분명 전략을 ‘수립’하고 그 전략의 ‘지속성’을 보장하게 하는 ‘의사 결정 집단(decision-making group)’이 존재했다. 황제 자문위(consilium principis)를 비롯해 국가의 최고위층(primores civitatis)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군사적으로 중차대한 결정의 순간마다 황제의 최측근 조언자로 기능했다. 또한 당시 로마나 파르티아 같은 대제국들의 변경 및 외교 정책이나 군사 배치, 이동, 보급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그 주변부에 존재했던 왕국이나 부족국가들의 기준에서 볼 때 충분히 ‘전략’적이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제 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결과, 기원전 66년 아르메니아 왕국은 로마의 동쪽 변경이자 파르티아의 서쪽 변경인 접경지대에 위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후 로마의 대(對) 파르티아 전략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해졌다. 기원전 53년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 실패 이후 험악했던 양국 관계는 기원전 20년 아우구스투스의 기지로 회복되었다. 아르메니아 문제는 파르티아가 추천한 아르메니아 왕위 후보자를 로마가 임명하는 형식으로 일단락됐으나, 실질적으로는 로마 황제가 아르메니아 주변 왕가들에서 친 로마적인 인사를 임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황위계승이 걸린 빈번한 내분으로 개입의 기회를 놓치고 있던 파르티아는 서기 54년 같은 아르사케스조의 티리다테스 1세(Tiridates I)를 기습적으로 아르메니아 왕위에 앉힘으로써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네로가 코르불로를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아르메니아 전쟁이 시작됐다. 코르불로의 작전 수행은 로마의 기본전략이 반영된 것이었다. 동부 속주들의 방위를 재정비하고 아르메니아에서의 로마 우위를 되찾으면서 파르티아와의 전면전은 피했다. 그러나 승기에 고무된 네로가 지휘관을 파이투스로 교체하고 아르메니아 병합을 시도하면서 전면전이 불가피해졌다. 결과는 서기 62년 란데이아에서의 뼈아픈 패배였다. 이듬해 네로가 국가의 최고위층(primores civitatis)과 상의한 끝에 지휘권을 코르불로에게 넘기자 다시 상황이 로마에 유리하게 흐르기 시작했고, 코르불로는 사태를 수습하고 아르사케스조 파르티아를 위협하여 란데이아 조약을 이끌어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향후 로마 황제가 파르티가 추천한 아르사케스조 왕족을 아르메니아 왕으로 승인할 것, 그래서 로마에서 네로의 주관으로 티리다테스 1세의 대관식을 갖는 것이었다. 서기 66년 네로는 로마를 방문한 티리다테스 1세에게 왕관을 수여했고, 이 보여주기 식 행사에 엄청난 예산을 들였다. 로마도 파르티아도 아르메니아를 완전히 병합하기 위해 서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아르메니아를 속주화한다면 국경선은 대폭 확장될 것이고 그만큼 변경 방위는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아르메니아 왕국은 완충국(buffer state)으로 남아있을 때 전략적 가치가 더 컸다. 란데이아 조약은 이러한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평화는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전쟁이 있기까지 50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아르사케스조 왕족을 로마가 아르메니아 왕으로 승인한다는 란데이아 조약의 대원칙은 서기 252년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가 아르메니아를 병합할 때까지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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